대구 역사는 이서공에서 이범선? 이서공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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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역사는 이서공에서 이범선? 이서공원[李溆公園 ] 다녀와서...

    이서공과 신천에 관한 이야기는 아래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시작에 몇 할 말이 없어 몇자 적어봅니다. 1776년 대구 판관으로 부임해 대규모 치수사업을 펼친 이서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공원?아니 공원입니다. 대구분도 잘 모르시거나 그냥 무심코 지나다니는 그런 곳입니다. 

    필자 역시 하루에도 이곳을 몇 번씩 지나다니지만 이런 공원이 있다는 사실을 최근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분이 있었기에 대구가 있었고 지금의 후손들은 아주 편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포스팅을 합니다. 

    현재의 공원은 2000년 약 8억6000만원의 사업비를 들여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공원이 조성되기 전에는 판자촌이었다고 하는데... 2000년도에 이곳 땅값이 얼마인데... 판자촌은 아닌것 같고 아니 잘못된 정보같습니다.  

    이서(李溆, 1732~1794)공이라는 사람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점입니다.

    신천은 원래 지금과는 다른 물길이었고, 홍수 때마다 범람하여 많은 피해가 발생했는데... 1778년 주민의 부담이 걱정되어 이서공이 사비를 들여 제방을 축조했습니다. 그 이후 공사를 하면서 물길을 돌려 새로 만든 하천이 바로 대구분들이 자주 이용하는 신천입니다. 그 때 주민들이 제방의 이름을 이공제라 칭하고 그 해 8월에 이공제비를 세웠다 전해집니다.  

    이서공원

    대구시 입장에서는 아주 중요한 공원이지만 홍보는 물론 주변 환경이 뭐라~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이용할 수 없는 곳같은 느낌입니다. 필자가 이곳을 방문하게된 이유는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면서 중동교에서 상동교까지 올라가면서 이서공원을 알게되었습니다. 

    이서공원

    이서공원 인근 주택 담장에는 다양한 조형물과 그림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이서공원

    사진은 없지만 대구시 유형문화재 23호 '군수이후범선영세불망비' 역시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줘야하는 유산입니다. 비각 안에 3기의 비가 있는데...  왼쪽부터 이공제비(대구 주민이 이서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가운데 비는 이공제비가 세월이 흘러 초라하여 그의 업적을 영원히 기리는 의미로 순조 5년(1805)에 다시 세운 비입니다. 그리고 가장 오른쪽 비가 군수이후범선영세불망비입니다. 광무 3년(1899) 세운 비이며, 고종 당시 대구 수령으로 있던 이범선의 공적을 기리고 있는 비입니다. 1898년 큰 홍수가 일어나 이공제의 하류부분이 파손되어 대구읍성이 위험하게 되었는데... 이범선역시 민폐를 끼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빠른 시간에 보수공사를 마쳐 주민들의 근심을 덜어주었습니다. 이에 보담하고자 대구 주민들이 세운 비입니다.


    결론은 비 3기 모두 주민들 자발적으로 세운 비라는 점이 의미가 있습니다. 이 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구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 아닐까 생각되어지네요.

    이서공원

    이서공원 인근 담벼락에 새겨진 그림입니다. 다소 부족한 점이 있지만 간략하게 이서공의 업적을 알 수 있는 그림이니 꼭~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시길....

    이서공원

    어떤 의미인지 몰라도 이서공?의 얼굴이 아닌 등을 그려 이곳을 다녀가신 분들에게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그림입니다.



    #이서공 #이서 #신천 #이서공원 #대구상동 #군수이후범선영세불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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